선농제는 신라시대 이래로 국가 규모 제사이었으며, 또한 우리 민족은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탕반민족이다. 이를 보면 맹물에 고기만 넣어 끓이는 아주 간단한 음식인 설렁탕은 조선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요즘에는 곰탕과 설렁탕의 구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용하는 고기 부위와 간을 맞추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설렁탕은 사골·도가니·양지머리 또는 사태를 넣은 다음 우설牛舌·허파·지라·창자 등과 잡육을 뼈째 모두 한 솥에 넣고 푹 삶아서 우려 낸 국물음식이다. 설렁탕에는 곰탕보다 뼈가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뽀얗다. 설렁탕은 조리 때 간을 하지 않고 먹을 때 식성에 따라 소금, 후춧가루, 다진파 등을 넣어 간을 맞추어 먹는다. 고기는 편육으로 만들어 놓고,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얹는다. 깍두기,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깍두기 국물을 설렁탕에 넣어 간을 맞추어 먹기도 한다.
곰탕이나 설렁탕은 집에서 적은 양을 끓여서는 제맛이 안 난다. 구색 맞추어 고기 부위를 고르기도 어렵고, 큰 솥에 많은 양을 오랜 시간 푹 끓여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개화기에는 설렁탕 전문집이 여러 군데 있었다고 한다. 1929년 12월 1일 『별건곤』이란 잡지에 ‘우이생牛耳生’이란 필명을 쓰는 사람이 ‘괄세 못할 경성 설넝탕, 진품·명품·천하명식 팔도명식물 예찬’이란 제목으로 쓴 기사에 설렁탕이 서울의 명물이 될 수가 있으며, 따라서 조선의 명물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글을 통해 이미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춘 1920년대 서울에서 설렁탕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는 한때 이름난 설렁탕집이 여러 곳 있었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화신백화점(현재 종로타워) 뒤에 위치한 이문설렁탕집이다. 손님이 오면 바로 앞에서 찬밥을 담은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 토렴하고, 그 위에 국수 한 사리와 얇게 썬 편육 조각을 손으로 집어 얹은 뒤 다시 끓는 국물을 부어 말아 준다. 손님은 상 위에 놓인 소금과 고춧가루, 후춧가루, 파를 적당히 넣어 먹는다.
특징 및 의의
이성우는 『한국식품사회사』에서 “영조 대발간된 몽고어 사전인 『몽어유해 蒙語類解』에 의하면, 몽고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 적고 ‘슈루’라고 읽고 있다. 고려 말 몽고의 고기요리가 이 땅에 전해지면서 ‘공탕’이 ‘곰탕’, ‘슈루’가 ‘설렁탕’이 되었다고 본다.”며 설렁탕을 선농단에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참고문헌
3대가 쓴 한국의 전통음식(황혜성 외, 교문사, 2010),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휴머니스트, 2013),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한복진, 현암사, 1998), 한국식품사회사(이성우, 교문사, 1984).